한국어를 모국어로 삼은 우리 시민들에게 영어는 중력과 같다. 늘 짐이
되는데, 내려놓을 길이 없다. 도대체 영어는 어떤 언어인가?
언어는 정보를 담아 처리하는 수단이다. 우리 지식이 늘어날수록 정보의
중요성은 뚜렷해진다. 자연히 생명체들은 정보 처리를 위한 언어를 갖춰야 한다. 우리는 그 언어를 유전자라 부른다. 유전자 언어에 담긴 정보
덕분에 지구 생명체들이 생존하고 자식들을 낳아 대를 잇는다.
유전자 언어에 담긴 정보들엔 이차적 언어들의 바탕을 이루는 정보들이
들어 있다. 출현 순서를 따르면 신호 언어, 음성 언어, 문자 언어, 수학, 컴퓨터 언어 같은 것들이다. 물론 출현 순서대로 배우기 쉽다.
맨 먼저 출현한 신호 언어와 음성 언어는 다른 고등 동물들도 갖추었다. 이들 이차적 언어들 가운데 기본적인 것은 음성 언어다.
그래서 일상에서 언어는 음성 언어를 뜻한다.
우리는 자신이 태어난 사회에서 쓰이는 언어를 배워 모국어로 삼는다. 이런
각인(imprinting)은 새끼가 어미를 알아보거나 연어가 태어난 강을 기억하는 것과 같다.
언어의 각인은 유효기간이
11세까지다. 그때까지 어떤 언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그 언어를 원어민으로 쓸 수 없다.
문제는 언어들의 효용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쓰는 사람들이 많은 언어는 적은 언어보다 당연히 효용이 크다. 이런 망효과(network effect)는 제국의 공용어에서
극대화된다.
아람어, 그리스어, 라틴어, 그리고 한문은 제국의 출현에 힘입어 국제어의 자리를 차지했던 언어들이다. 적어도 현대에선
영어가 그런 혜택을 누린다. 중요한 정보들은, 특히 과학과 기술은, 대부분 영어에 담긴다.
영어의 득세는 다른 언어들의 쇠퇴를
뜻하니 궁극적으로 박물관 언어(museum language)들이 될 것이다. 지금 주요 언어들 가운데 먼저 박물관 언어가 될 가능성이 큰 것은
중국어다.
중국어는 주류 언어인 인도-유럽 언어와 구조가 크게 다른 데다가 너무 비효율적인 한자를 문자로
지녔다.
14억 중국인들이 영어를 쓰는 상황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논리는 그런 미래를 가리킨다. 그리고 미래의 예측에서 논리와
상상이 부딪치면 논리를 따르라고 아서 클라크는 충고했다.
이처럼 언어는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언어들 가운데 영어는 압도적으로
중요하다. 영어를 모르면 중요한 정보들에 대한 접근이 원천적으로 막힌다.
외환위기 때 우리 정부 대표단이 미국 금융인들과
협상했다. 회의가 시작되자 우리 대표들은 월스트리트 사람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금융계는 제도들과 상품들이 빠르게 진화하는 분야라서 처음
들어보는 말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협상은 미국인 변호사가 주도했고, 그의 활약에 감격한 대표들은 그에게 훈장을 주자고 했다. 이 서글픈
일화는 도처에서 되풀이될 것이다.
우리 시민들은 모국어인 한국어와 세계어인 영어를 함께 배워야 한다. 실은 나름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
영어에 서툰 시민들도 따지고 보면 영어를 제2언어로 삼은 이중언어 사용자(bilingual)들이다. 다만, 영어를 별
어려움 없이 이해하지만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수용적 사용자'들이다. 그들이 영어로 유창하게 말하는 '생산적 사용자'들로 도약하도록 돕는 것이
영어 교육의 현실적 목표다.
그 목표를 이루는 전략도 간단하다. 언어는 어릴 적에 각인되므로 되도록 일찍부터 배워야 한다. 이중언어
사용은 크게 이롭다. 풍부한 정보들을 얻어 삶이 풍요로워진다.
마음이 민첩하고 갈등을 잘 풀고 치매에 대한 저항력이 높다. 당연히
지능계수가 올라가고 소득도 높아진다. 반면에 여러 언어들을 동시에 배우는 데서 나오는 부작용은 없다. 통념과 달리 어릴 적에 배워도 심리적
불안이나 정체성의 혼란이 나오지 않는다.
영어는 쓸모 있는 정보를 얻는 길이다. 기회가 나올 때마다 내려놓을 짐이 아니다.
왜 영어를 배워야 하는지 모르는 채 억지로 영어를 공부하는 젊은이들이 그 점을 깨닫도록 하는 것은 중요하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영어 습득에 대한 투자는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투자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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