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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학생부종합전형\' 시대 2016-03-23 02:57:06 2824

 

영어로 하는 공학수학 듣다 이해 안 돼 포기
군복무 대체요원 63% 탈락도 영어가 한몫

중. 고때 공부 제대로 안한탓

 

서울대 공대 건설환경공학부 4학년에 재학 중인 A씨는 2년 전 영어로 진행되는 공학수학 강의를 듣던 도중 강의실 문을 열고 슬그머니 나왔다. 수업 내용이 전혀 이해되지 않아서였다.

그 길로 수강을 포기했다. A씨는 “당시 기본 수업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내 상황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최대한 뒤로 미뤘던 이 강의를 이번 학기에 재도전했지만 여전히 녹록하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정한 그에게 영어는 ‘피할 수 없는 산’이 됐다. 대학원에 진학하려면 공인 영어성적인 TEPS 점수가 600점을 넘어야 하는데 그 점수가 좀체 나오지 않아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A씨는 “학과 공부나 대학원 준비는 제쳐 두고 영어 공부에 매달리고 있는 최근 내 모습이 안쓰럽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작지 않다”고 말했다.

과학 분야 최고 엘리트들이 모인 서울대 이공계가 ‘영어 노이로제’에 시달리고 있다. 한 공대 교수는 “입시에 지장이 없어 중학교 이후로 아예 영어 공부에서 손을 뗀 학생이 많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했다. 이공계생들의 학내 영어수업반 배치현황은 이런 상황을 여실히 보여 준다.

서울대는 입학 때 TEPS 점수에 따라 재학생들에게 교양영어 과목을 배정한다. 올해 개설된 ‘기초영어’엔 550점 이하의 학생 400여 명이 몰렸다. 이 중 이공계생 비율은 50%에 달한다. 서울대에서 7년간 대학영어 강의를 한 강사 이모씨는 “이공계생들이 기초 영어나 작문에서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 놀랐다”고 말했다.

영어는 전공 공부, 대학원 진학, 군복무 대체 등 곳곳에서 이공계생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교과서와 수업 자료가 원서인 경우가 많고 졸업 논문도 영어로 작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원 진학 후에도 해외 학회 등에 참석하려면 영어 발표 능력이 좋아야 한다. 산업공학과 대학원 3년차 B씨는 “학회 발표 자료를 작성할 때면 영어 관용어구가 정리된 웹사이트를 이용해 베껴 쓴 뒤 해외파 선배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이공계생들의 ‘전문연구요원’ 합격에도 영어는 걸림돌이다. 전문연구요원은 3년 동안 박사 과정을 이수하며 군복무를 대체하는 제도다. 전문요원 합격을 위해선 700점 이상의 TEPS 점수가 필수다. 지난해 서울대 이공계생 691명이 이 제도에 지원했지만 63%가 탈락했다. 전기정보공학부 대학원에서 석·박사 통합 과정을 밟고 있는 정모(26)씨는 “전문연구요원 합격을 위해 아예 휴학을 하며 영어학원에 다니거나 연구에 집중하지 못하고 때늦은 영어 공부에 시달리는 대학원생이 많다”고 말했다.

최근 인공지능(AI)·드론·가상현실(VR) 등 과학 분야에서 전 세계적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영어의 벽에 막힌 서울대 이공계의 현실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대 관계자는 “최근 서울대는 연구 성과를 놓고 국내가 아닌 해외 명문 대학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고 노벨상 수상자급 석학들을 초빙해 강좌를 맡기는 것도 글로벌 인재 양성을 위한 것”이라며 “이공계 학생들이 가장 기본이 되는 영어 때문에 고전한다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 공대 안경현 교무부학장은 “영어 논문 작성 특강을 확대하고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해 해외 견문 기회를 늘리는 등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영어 공용화 파워

 

미국 페이스북의 원조(元祖)는 우리나라의 싸이월드다. 1999년 카이스트 경영대학원생들이 세운 이 회사는 폰카로 사진을 찍어 인터넷 친구와 공유하는 '싸이질' '미니홈피' 같은 혁신성에서 세계 최고였다. 하지만 2008년 가입 회원이 3500만명에 이를 정도이던 인기는 그 후 크게 꺾여 지금은 옛 얘기가 됐다.

만약 10여년 전에 싸이월드가 영어 서비스를 적극 제공하고 정교한 해외 진출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적어도 페이스북에 완패하지 않고 계속 잘나가고 있을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을 것이다.

1997년 출범한 일본 인터넷 쇼핑몰 라쿠텐은 이런 '상상'이 '현실'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해외 사업에서 숱한 실패를 맛본 라쿠텐의 미키타니 히로시 회장은 근본적인 장벽이 언어임을 간파했다. 그는 2010년 영어를 사내(社內) 공용어로 정하고 2년여 준비를 거쳐 2012년 7월부터 사내 프레젠테이션과 회의·교육·문서 및 이메일 작성 등을 모두 영어로 의무화했다. 그 결과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성장하며 회사 매출과 영업이익을 각각 73%, 44% 늘렸다. 세계 27개국에 회원은 1억명이 넘는다.

미키타니 회장은 "영어 공용화를 통해 글로벌 차원의 기술과 노하우를 받아들이고 외국을 공략한 게 성공 비결"이라고 말한다. 2~3년 전 사내 공용어를 영어로 바꾸는 '영어화'(Englishnization)를 단행한 유니클로와 브리지스톤, 혼다, 다케다제약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영어를 마지못해 기계적으로 쓰지 않고 발상과 의식을 글로벌화하는 실용적인 '도구'로 십이분 활용한다는 것이다.

2005년 세계 328위(이하 시가총액)이던 KB국민은행이 올해 500위권 밖으로 추락한 반면 같은 기간 세계 500위권에서 303위로 약진한 싱가포르DBS은행 간 상반된 운명의 승부처도 영어력(力)에 기초한 글로벌 역량 격차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말 영어 공용화 논쟁이 불붙었다. 당시에는 '어머니가 문둥이일지라도 클레오파트라와 절대 바꾸지 않겠다'는 식의 감성적 주장이 횡행하면서 없던 일이 됐다. 지금이야말로 영어를 한글에 이은 제2공용어로 삼는 방안을 진지하게 추진해 볼 만하다.

무엇보다 세계 최저 출산율과 급속한 노령화로 내수(內需) 시장이 줄어드는 마당에 글로벌 진출이 생존의 필수조건이 된 현실 때문이다. 세계 인터넷 정보의 90%를 장악하고 모든 국제 거래와 협상의 공통 언어인 영어 활용 능력을 높인다면 해외 공략에 획기적인 길이 열릴 수 있다.

새 일자리 창출 효과도 기대된다. 외국 현지는 물론 글로벌 기업과 국제기구 등으로 청년 취업이 활발해지고 국내 외국인 투자 유치도 탄력을 받을 것이다. 영어 제2공용어화는 영어 수준에 따른 국내 계층 간 소득 격차를 해소하고, 중국·일본과 차별화되는 '매력 국가'로 발돋움하는 강력한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네덜란드·싱가포르 등이 공동체의 정체성도 잘 유지하고 있는 걸 보면 영어 제2공용어화에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사회 전체가 아니라도 '영어 특구(特區)'식으로 필요한 조직과 분야에서 영어 능력과 활용도를 실질적으로 높이면 된다. 영어 제2공용어화는 10년째 1인당 소득 2만달러 벽에 갇혀 있는 한국 경제 현실을 돌파하는 유력한 '황금 열쇠'이다.<조선일보 >
 
 
학습의 힘
 

올 들어 알게 된 기업인 가운데 인상적인 이는 국내 1위 계란 유통기업 '조인'의 한재권 회장이다. 1979년 직원 3명과 함께 서울 내곡동에서 병아리 부화장을 시작한 그는 초등학교 졸업이 정규 학력의 전부이다. 하지만 2005년 300억원대이던 매출액이 지난해 2000억원이 돼 9년 새 700% 정도 컸다. 지난해 세전(稅前) 당기순이익 175억원을 냈고 올해엔 2700억원 매출을 자신할 정도로 성장세가 가파르다. '조인'은 전국 20여개 농장에서 하루 200여만개의 계란을 생산해 연간 7억개 정도를 대기업과 대형마트에 주로 공급한다.

흥미로운 것은 숱한 한계를 돌파하고 우뚝 선 비법(秘法)이다. 위장 보호 기능을 함유한 기능성 계란, 자연 방사 유정란처럼 연구·개발(R&D)로 탄생한 제품과 병아리 부화~산란계 사육~계란 생산을 잇는 전(全) 과정을 일관 공정화한 생산 시스템 등이 있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한 회장이 꼽는 최고 원동력은 '학습의 힘'이다. 10년 넘게 매월 7000㎞씩 스스로 운전하며 전국을 돌던 그는 40세 때 '배움에 대한 갈증을 심하게 느껴' 운전기사를 고용했다. 그러고는 자동차 뒷좌석을 독서실 삼아 하루 4~5시간씩 경영·경제·회계·미래 서적을 탐독했다. "피터 드러커 박사와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저서는 모조리 밑줄쳐가며 읽고 또 읽었어요. 해당 부분을 회사 업무에 어떻게 적용할지 직원들과 토론했지요."

이렇게 정독한 서적만 1000권이 넘는다. 매일 아침 5시 이전에 일어나 조찬·만찬 학습 프로그램에 참석해 경영 노하우와 세계 흐름에 눈을 떴다. 새벽 전화 강의와 휴대폰 앱 강좌로 대학원생 뺨치는 외국어와 인문학 식견도 갖췄다. 이런 노력을 20년 계속한 2010년 매출 1000억원을 넘는 '기적'이 찾아왔고, 다시 4년 만에 그 배가 됐다.

100여개의 직영 매장에 직원 2500여명을 둔 한국 미용업계 최강자 준오헤어 강윤선 대표의 비밀 병기 역시 '학습'이다. 대학 진학은 꿈도 못 꾼 채 기술고 졸업 후 미용실을 연 그는 책에서 인생과 경영을 배워 종업원 5명의 동네 미용실을 세계적 헤어 그룹 웰라가 뽑은 '세계 10대 미용 기업'으로 만들었다. 21년째 전 직원을 상대로 독서 경영을 하는 강 대표는 "독서를 통해 생각이 깊어지면 창의력이 생기고 손놀림까지 유연해져 업무 능력도 향상된다"고 말한다. 준오헤어 헤어 디자이너 1000여명 가운데 200여명이 1억원 넘는 연봉을 받는다.

'학습의 힘'으로 세계를 제패한 기업인도 있다. '손자병법'을 비롯한 고전 4000여권을 독파한 뒤 가로 5자, 세로 5자, 총 25자로 이뤄진 '제곱병법'이라는 독자 경영 전략을 창안한 손정의(孫正義)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대표적이다. 야나이 다다시(柳井正) 유니클로 회장은 피터 드러커의 '고객 창조' 아이디어를 응용해 전 세계에서 1억장 넘게 팔린 수퍼 히트 상품 '히트텍'을 내놓았다.

메르스 사태가 끝나더라도 한국 기업 앞에는 가시밭투성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본원적 힘은 구조조정이나 사업 재편 못지않게 내면(內面)의 깨달음과 태도의 변화에서 나온다. '학습의 힘'에 목말라하며 솔선하는 기업 리더가 더 많아질 때 한국 경제에 빛이 비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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